미츠꼬여 용서를_by 성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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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고여 용서를!
일본어에는 한자가 무척 많이 쓰인다. 일본식으로  발음은 못해도 뜻은 그럭저럭
통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가끔은 예외가 있는데 미즈고(水子)라는 단어가 바로
그렇다. 미즈고는  유산되거나 낙태시킨  어린 생명을  지칭한다. 미즈고의 미즈
(水)는 원래 물이라는 의미이나「낙태하다」는 뜻도 지니고 있다. 한자가 다양하
게 사용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본보기이다. 옛날에 낙태의  은어로「물로 만든다
」라는 말이  부인들 간에 통용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일본  사람들은 유일신에
대한 신앙심은 돈독하지  않지만 신을 섬기는 데는 광신도에 못지  않다. 웬만한
가정에는 신단을 두고  있으며 먼지가 않을세라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유산되
거나 낙태시킨 생명체에게 대해서도 공양을 드리고  용서를 구한다. 이런 풍습이
있는 곳은 세계에서  일본뿐이 아닌가 한다. 한국 보건사회 연구원이  최근 공개
한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에도 태아 성감별과 낙태를 통해 희생되는 여아만 해
도 연간  3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이들의  명복을 비는
곳은 없다. 도쿄  타워 부근에 증상사(增上寺)라는 큰 절이 있다.  도쿠가와 이에
야스와 관련된 사찰이라고 하여 유명하다. 본래는  20만평의 넓은 대지였으나 지
금은 대부분  공원으로 조성되고 7,000평  정도 된다. 땅값  비싼 도쿄 중심가에
7,000평의 경내 면적을 가진 절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역시 그 절의 명성 때문
일 것이다. 그 절 한쪽 켠에 바람개비를 손에  든 어린 돌부처 무리가 풍상을 견
디고 있다. 벚꽃잎이 하얀 눈처럼 석불위에 하염없이 지고 있는데, 사연 많아 보
이는 아가씨가 돌부처처럼 서있는 모습을 훔쳐 본  적이 있다. 미즈고를 위해 작
은 석불을 만들고 예를  드리는 젊은이들의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다. 도쿄 부근
에 아기절이라 불리는 정애원이 있다. 미즈고의 왕생극락을 기원하는 곳이다. 주
위에는 과자, 장난감,  턱받이, 양말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고  향불의 연기가 끊
이지 않는다. 죄없는 어린 생명에 대한 참회 의식이다. 집안에 우환이 그치지 않
거나 사업이 안되면, 마음에 짚이는 데가 있는  부인네들은 남편 몰래 조용히 절
에 가서 미즈고를 위한 공양을 드린다. 아예  절에서 돈을 받고 일정기간 목탁을
두드려 위로하기도 한다. 일본에는 옛날부터 먹고  살기 힘든 집안에서는 한입이
라도 줄이기 위해  영아를 살해하여 강이나 바다에 버리는 습관이  있었다. 주로
2∼3세의 여자아이가 그 대상이 되었다. 무우나 배추를 솎아내듯이, 가족 존체를
위해서 솎아내 죽인다고 하여 마비키(間引)라고 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대로 조직의 생리에 비추어  개성이 너무 강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주위의
경원에 배겨나지 못하고 스스로가  물러나게 하는 것도 현대판 마비키라고 하겠
다. 초근목피로 연명해야 했던 옛날 우리 땅에도 살아속, 애버레 등의 악습이 있
었으나 그 정도가  일본에서는 상당히 심했던 모양이다.  1585년에 간행된《야소
회 일본연보》에 어느 선교사가  악마의 부추김으로 영아 살해가 무수히 많다고
적고 있을 정도이다. 일본 자장가에조차 마비키를 지칭하는 단어가 나오고 있다.
"자장, 자장, 잘자거라 자지 않으면 강에  버린다 자장, 자장, 잘자거라 자지 않으
면 묻어 버린다" 이 자장가 중「강에 버린다」,「묻어 버린다」는 마비키의 은어
라고 한다. 기근, 질병 그리고 마비키 등으로 일본 인구 증가가 심한 정체현상을
보인 적도  있다. 1726년 일본에서 최초로  실시한 인구조사에 의하면 2,655만의
인구가 100년 후인 1828년에는  고작 65만이 증가한 2,720만에 불과했다고 한다.
메이지 시대에는 생활고에 시달린  젊은 어머니들의 아직 동서남북도 모르는 철
부지와 함께 자살하는  경우가 많았다. 영아 살해라는 가혹한 십자가를  평생 지
고 사느니 차라리 같이 죽어 버리자는  자포자기의 심정이었을 것이다. 요즈음에
는 생활고로 인한 낙태는 없다. 잡지 등에  나오는 통계를 보면 일년에 약 200만
건의 낙태 시술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중에는 가족 계획에 의한  수술도 있겠지
만 반드시 다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추세라면 일본 중들은 미즈고 공양만
대신해 줘도  밥먹고 살기는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일본 절이  일반인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장례식과 가족 묘지를 절에서 도맡아 해주
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에는 미혼모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그런데 요
즘에는 미혼모  대신 비혼모(非婚母)라는 말이 쓰인다.  미혼모라는 단어가 주는
차별적 이미지를 없애기  위해서이다. 미혼이 아니라 자기 의사에 의해  결혼 하
지 않고, 남자 없이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여자에게
결혼이란 의례가 반드시 치러야  하는 필수사항이 아니고 혼자서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방식도 조금도  꿀릴 것 없는 삶의 형태라고 주장하고  싶어한다. 1994
년 비혼모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비혼모 모임>이 도쿄에서 결
성되기도 한다. 일본 여성들은 피임약보다는 콘돔을 즐겨 사용한다고 한다. 콘돔
사용 비율이 75퍼센트로 세계에서 단연 최고라고 한다.  일제 콘돔이 맨 처음 선
을 보인  것은 1860년대 말이었다. 도쿄의  어느 약국 주인이 고무  풍선 가게에
수입품을 보며 주면서 제조를 부탁하여 개발되었다고  한다. 일본의 개량 기술이
유감없이 발휘되어 1930년대에는 두께 0.1mm의 제품을 생산하여 콘돔 수출국이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중국  대륙을 비롯하여 동남아 각국으로 출병한
일본 병사들에게 국제 매독이 퍼졌다. 당황한  군부에서는 콘돔을 대량 제조하여
다른 군수품과 함께  병사들에게 지급하였다. 육군용 콘돔은「동격 앞으로」, 해
군용은「철모」였다. 1992년 생산량은  10억 개를 상회했으며 이중  60퍼센트 정
도가 국내  수요용이고 나머지 40퍼센트는  해외에 수출되고 있다.  현재 콘돔의
질은 개량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초완성도를 자랑하고 있으며 두께도 0.02mm로
얇아졌다. 이와 같은  완벽한 콘돔 수출국인데도 연간  기백만의  낙태시술이 여
전히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니 알고도 모를 일이다. 요즈음 젊은  여자들 사이에
는「신체 토론회」라는 모임이  있다고 한다. 다이어트나 예뻐지는  방법을 토론
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지 않은 임신을 피하기  위한 여성 모임이라고 한다. 일본
인들이 미즈고에 대한 참회의 예를 드리는 장소로서 어째서 신사보다는 절을 선
호하는 것일까. 이미 말한 대로 미즈고 공양을 전문으로 하는 절도 있다. 미즈고
공양 사업을 벌인 셈이다. 불교의 상업주의 영향도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것
보다는 신토(神道)가 갖는 특성  때문인 것같다. 보통 일본에서는 아이가 태어나
면 미야마이리(宮參)라는 신사  참배의 통과의례를 거친다. 사내  아이는 32일째,
여자 아이는 33일째에  신사 참배를 한다. 일종의 조상신에게 인가의  한 동아리
속에 들어와서 특히  같은 씨족의 후예임을 고하는 의식이라 하겠다.  이와 같이
신사는 출생과 깊은 관계가 있는데도 미즈고 공양은  절에 가서 한다. 신토는 죽
으면 지옥 또는 천당으로 간다는 식의 내세관을  갖고 있지 않다. 신토는 엄격한
의미에서 종교라고 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경전도 교의도 없다. 물론 교조도
없다. 조상신을 모시는 조상 숭배교라고나 할까. 일본에는 공식 등록된 신사 8만
개를 포함하여 미등록된 군소 신사까지 총 20만  개쯤 된다고 한다. 신사에서 받
드는 신조차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까지 모시고 있던 신이  효험이 떨어
진다고 생각되면 절 나가는 신의 분령을  모셔오기도 한다. 일본어에 800만의 신
이라는 말이 있듯이 일본은  신의 나라, 귀신의 나라이다. 사람은 죽으면 누구나
부처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신사에서 피안으로  사라져 버린 어린 생명의 명
복을 어떻게 빌 수  있겠는가. 원래 일본 사람은 신사와 절을  별개의 것으로 생
각하지 않았고  오히려 신불혼효(神佛混淆)였다.《일본서기》에도 <요메이(用明)
천황이 불법을 믿고  신토를 존중하다>라고 기록되어 있듯이 불교와  신토를 아
울러 믿었다. 현재에도  대개의 가정에는 신단과 불단을 나란히 만들어  놓고 있
으며, 신사와 불교  사찰의 행사에 다같이 참여하는 것이 일본인의  종교 행태이
다. 메이지 시대에  접어들면서 신토를 국교로 삼기 위한 정치적  의도에서 메이
지 정부가  신토와 불교를 갈라  놓았다. 미즈고는 미야마이리도  못했기 때문에
조상신 가까이 가지  못하고 절간 한켠에 있는  석불의 바람개비가 만든 바람은
타고 구천을 헤매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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