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토로부터 도쿠가와 막부까지_by 성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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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토로부터 도쿠가와 막부까지
일본에 관한 책을 읽다 보면  헤이안 시대, 나라 시대, 가마쿠라 시대 등의 시대
구분에 자주 부딪히게 되는데, 얼른 감이 안와서  갑갑함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느  시대의 정확한 연대를  모른다고 해서 책읽는  재미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신을 신고 발바닥 긁는 것처럼 시원하지가  않다. 그래서
책읽는 즐거움을 더하기 위해서  지극히 간략하게 일본 역사를 더듬어보고자 한
다. 고대 일본이  어느 정도 국가로서의 모양새를 갖추게 된  때는 4∼5세기경으
로 교토 부근을 중심으로  한 야먀토(大和) 정권의 출현에 그 시발점을  두고 있
다. 야먀토 정권은  천황을 중심으로 강력한 지배 조직을 갖추었고  모든 토지가
국가 소유로 되어 있었다. 이 시대의 대표적 인물은 뭐니뭐니 해도 쇼툐구(聖德)
태자이다. 그는 권력  투쟁을 지양하고 천황 명령에 복종을 강조하는  일종의 도
덕률인 17개 헌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이 시대에 특기할 만한  사항은 우리나라
삼국으로부터 한자, 불상과  경전, 종이, 묵이 전해졌던 점과  서기 646년의 다이
카 가이신(大化改新)으로 불리우는 정치적 대전환을 시도한 것이다. 율령 정치에
철저했던 나라(奈良) 시대(710∼784)는 수도를  나라에 두었다고 해서 붙여진 명
칭이다. 나라는  오늘날 교토로부터 급행  열차편으로 40분 걸리는  곳에 위치해
있으며 발해가 건국되고 불국사가  창건되었을 무렵인 서기 710부터 약 70년 간
지속되었다. 이  짧은 기간 중에《고사기》(710)와《일본서기》(712)의  역사편찬
사업이 이루어졌고  일본 민족의  서정시로 알려진《만엽집(萬葉集)》이  완성된
것을 평가할  만하다. 천황과 귀족들의  생활이 윤택해지는 가운데  승려 세력과
후지와라(藤原)를 중심으로  하는 귀족세력 간의 권력투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어
결국 후지와라의  승리로 끝났다.  헤이안(平安) 시대(794∼1185)는 정치  무대가
교토로 다시 옮겨진, 8세기 말부터 약 400년 간에 이르는 시대를 말한다. 후지와
라 가문이 대를 이어 천황의 외척으로서  정권을 좌지우지했다. 한반도에서는 고
구려 백제에 이어 신라가  멸망하고 고려가 창건되어 정중부 무신정권에 접어들
었던 시기였다.  헤이안(平安) 시대는 헤이안(平安)이란 글자와는  달리 매관매직
이 일반화되고 율령체제가  급격히 붕괴되었던 불안한 시기였다.  귀족들은 무사
단을 형성하고 장원을 본거지로 하여 중앙통제로부터 이탈하여 토호오 행세하면
서 정권투쟁을 일삼았다. 일반 민중들의 생활은  불안하여 내세를 기원하는 정토
종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염세적인 사상이 농후한  시절이었다. 천황가에
서는 막대한 재원을 투입하여  사원 건축과 불상을 건립했으나 민중들의 허허로
운 마음을 달래지는  못했다. 헤이안 시대 최대의 문화적 산물은  무라사키 시키
부(紫武部)라는 여류 문인이 쓴《겐지 모노가타리(源氏物語)》로서 이 작품은 세
계 문학에 기여한  일본 문학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시대에  가나문자가 제정되
어 귀족의 부인과 딸들을 중심으로  한 여류 문학이 발전했던 것은 주목할 만하
다. 정중부가  고려 조정을 좌지우지하다가  청년 장군 정대승에  의해 살해되고
경대승은 정권을 잡은  지 불과 4년 만에 발병하여 죽었던  무렵, 일본에서는 가
마쿠라(鎌倉) 막부라는  무사정권이 수립되었다.  가마쿠라 막부(1185  ∼1333)는
미나모토 요리토모(源賴朝)에 의해 창립되어 약 150년  간 지속된 최초의 무사정
권으로서 막부의 소재지가 도쿄에서  가까운 가마쿠라에 있었다고 해서  가마쿠
라 시대라고 한다.  막부(幕府)는 일본 무사 시대에  장군이 정치를 행하던 곳을
지칭한다. 정치의 중심지가 교토로부터 갑자기 동쪽의  이름도 없는 지방 도시로
옮겨지게 되었다. 막부 출현으로 교토 조정과  가마쿠라 막부라는 권력의 이원화
현상이 나타나게 된 셈이었다. 정치적으로 교토의  귀족 정권과 대립하면서 새롭
게 대두한 무사 계급들은 전국적인 군사권과  경찰권을 처음으로 장악하여, 본격
적인 봉건 시대를  열었다. 전통적 귀족 문화에 대해 이들은  동적이고 사실적인
소박한 문화를  이루어 나갔다. 미나모토(源氏)의 지배는  정권 내부의 알력으로
불과27년 만에 호조지(北 氏)에게 정권을 이양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가마쿠라
막부에 일대 충격을 준  사건은 1274년과 1281년 2회에 걸친 고려·몽골 연합군
의 침공이다. 일본은 풍전등화의 위기를 태풍으로  간신히 극복하였으며 일본 조
야에서는 이 태풍을  신이 일으킨 바람, 즉 가미카제(新風)라고 믿게  되었다. 가
미카제는 <일본은 신의 나라이다>라는 사상을  새롭게 부각시킨 계기가 되었다.
비록 적군을 격퇴하였으나  막부와 무사들의 군사적, 경제적  부담은 엄청났으며
막부의 통제력은  눈에 띄게 약화되어  결국 1333년에 멸망하고  말았다. 반세기
정도의 남북조 시대를 거쳐 아시카가  다카우지(足利尊長)에 의해 타도될 때까지
약 200년간 동란에  동란을 거듭했다. 당시 한반도에서는 고려의  국운이 다하던
시기였으며 이익이 십만  양병설을 주장하던 때였다. 무로마치  시대에 장원제가
완전히 붕괴되었고 농민들은 반노예 상태에서 벗어나 상인과 직인  계급으로 탈
바꿈했다. 놈업 생산력이  증가되고 교통망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상품 유통이
확대되었다. 귀족 문화, 사원  문화, 무사 문화가 뒤섞였으며 꽃꽂이, 다도,  묵화,
연가 등 서민문화가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무로마치  막부가 성립된 지 130여 년
이 지난 1467부터 1568년 간을 흔히 하극상이  난무하던 전국 시대라고 한다. 권
위나 전통은 실력 앞에 철저히 무시되고 조롱되었던 군웅 할거의 시대이자 암흑
의 시대였다.  전란에 의해 교토는  초토화되었고 봉건 지배자의  수탈이 턱없이
강화되던 때,  농민과 상인들은 자기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하여 하나로
뭉쳐 대항하였다. 이같은 전국  시대는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
秀吉)에 의해 통일되어 그 막을 내리게  되었다. 오랜 전란 끝에 막부 최후의 주
자인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지금의 도쿄인 에도(江戶)에 막부를 개설함
으로써 264년간의 에도 시대(1630∼1867)가  열렸다. 에도 시대는 700여 년에 걸
친 일본 봉건  체제가 완성된 시대로서 직업에 따라  사농공상(士農工商)으로 신
분이 결정되었다. 조선에도 사농공상의 신분제도가 있었지만 일본의 사(士)는 선
비나 독서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무라이 즉 무사(武士)를 지칭했다. 조선
은 문(文)을 숭상했고 일본은 상무적인 분위기였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주자학이
어용학문으로서 세력을 떨치고  충군과 효행 사상이 강조되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대의 특징은  상공업의 비약적 발전과 상공업을 경영하는  조닌(町人)의 등
장이다. 조닌은 일정 지역에  사는 상인과 직인을 의미하는데, 에도 시대에 새로
운 사회 계급으로 급부상하였다. 조닌 중에서는  고리대금업으로 장군 직속 무사
들의 재정을 흔들 정도로 부와 영향력을 축적한  자도 나타났다. 조닌 문화의 황
금기를 구가하던 이 시대의 정신적 유산이 오늘날의 일본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
다. 백성들은 오랜 전란 끝에 모처럼 찾아온 평화와 여유를  즐겼다. 가부키(歌舞
伎), 우키요에(浮世繪)등 조닌 생활 중심의 문화가 꽃피고 일본 성(性) 문화의 메
카 요시와라(吉源)가 역사의 정면으로  들어설 수 있었던 호색의 시대였다. 임진
왜란으로 단절되었던 조선과의  국교가 수복되고 나가사키(長崎)에 데지마(出島)
라는 바람 구멍을 통해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 1868년을 기점으로 한 메이지유신
의 기술적, 지적 토대가 마련됐던 시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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