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기_by 성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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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기
일본인 중에는 편집광적인  호사가가 많다. 별 가치도 없어 보이는  일에 심혈을
다 기울인 기인들이  많다.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기인들 때문에  대원군이 집권
할 무렵, 일본에서는 영일 대역사전이 간행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다나카
(田中)라는 일본 친구 역시 내가  보기엔 미친 녀석이 분명했다. 몽골 역사 전문
가라고 하기에 호기심이  동해 몇 가지 물어  보았더니 자신은 몽골 말안장만을
다루고 있어 다른 것은 모른다고 심드렁한  태도로 주절거렸다. 유목민에게 있어
말이 중요함은 말할 것도 없는데  전쟁터에 나서는 말은 그 안장이 승패를 결정
짓는다는 간단한 결론이었다.  몽골 말을 타고 울란바토르로부터  도쿄까지 여행
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일본인들 가운데는  엉뚱한 분야에 터무니없는 열정으
로 인생  전부를 거는데 이골이 난  사람들이 많다. 그 단적인  예가 1930년대에
한정판으로 출판된《도원화동(挑源華洞)》이라는 책이 잘 보여 주고 있다. 이 책
은 주로 남녀 성기의 명칭에  관한 유래, 의미 등을 집대성한 대작이다. 오래 된
한문 전적들이나 역
사책을 샅샅이  뒤져서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이와 비슷한  책자가 두서너
권 더 있다고 한다. 《도원화동》에는 300여 개의 여음 명칭이 정리되어 있어서,
그 분야에서는 세계  제일로 보인다. 중국어, 영어, 노어에 있어  그것에 관한 이
칭은 20여개 안팍이 된 것이라고 하는데, 300개를 넘는다니, 아니 그것을 연구라
고 하여 책으로 내놓을  것은 또 뭐람. 다양한 별칭의 존재가  그 사회의 호색문
화의 수준을 간접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라면,  일본은 호색 올림픽에서 메달권에
들 것이 틀림없다.  우리말로는 몇 개나 말할 수 있을까?  8세기에 편찬된《고사
기》와《일본서기》에서는 여자의  성기를 「호기」라고 칭하고  있다. 「호」는
불이나 태양을,  「토」는 장소를 나타내는 말이다.  일본 신화에서 태양과 불은
숭배의 대상이며  신성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음을  감안하면 「호토」는 신성한
곳, 신성한 영령이 나타나는 통로의 상징으로서  자연숭배의 대상에 포함된 것으
로 해석된다. 인격과는  별개로 움직이는 것이 신성하다니. 「호토」가 시사하는
바는 일본인은 성기를  신성시하고 숭배했다는 것이다. 우리말에는  성기를 사용
한 걸쭉한 욕설이 많은데 비해 일본어에는 거의  없다. 일본 사람이 내뱉는 욕이
라는 게, 고작「얼간이」,「바보」,「짐승  같은 녀석」정도다. 이같은 한일 간의
욕설 차이를 보면 일본인은 성(性)을 단순한 생리적  현상 그 이상으로 인식하였
음을 알 수 있다. 성기의 어원에 신성함을  부여한 예는 세계에서 일본뿐이 아닌
가 한다. 일본은 기본적으로  다신교의 나라이다. 신이 800만이 넘는다고 생각하
는 그들이니, 성기가 그 800만 중의 하나에 든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없다. 또한
일본에서는 옛날 여음의 불가사의  하나로 애액은 화상에 묘약이라는 속설이 있
었다. 손자가 불에  데면 할머니가 종이로 그곳을 닦아 상처를  문질러 주었다는
기록도 있다. 이 역시  성기 숭배사상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호토」는 한자
로 부등(富登)으로 표시하는데 신무(神武) 천황의 황비는「호토」를 이름으로 당
당히 사용하여, 일본 여성의  당찬 기개를 만방에 과시하였다. 일본 역사나 문학
에 조예가 깊었을 그녀가「호토」라는 명칭의 의미를 모를리 없었을텐데 그것을
내놓고 사용한 데는  자신의 물건이 천하명기라는 자부심이었을까.  호토 이외에
오만코, 간코,  메코, 찬코라는 어휘도  있다. 아키코(明子),  게이코(京子)와 같은
여자 이름이「코」로 끝나 묘한  생각을 하게 된다는 짓궂은 농짓거리에 상상력
의 비약이 너무  심하다는 일본 친구의 핀잔이 뒤따랐다. 망고라는  과일만 보아
도「오만코」가 연상되는 걸  어이하랴. 스웨덴 사람들이 한국  가정에 초대받아
<국 드세요>라는 말에 기절초풍을 했다는 말이  있다.「국(KUK)」은 스웨덴 말
로는 남성을 의미한다고  한다. 호토와 거의 같은  계열의 어휘로서「보보」라는
일본고어도 있다. 이 역시  불을 나타낸다. 우리말에 성기의 어원이 불에 있는지
또는 보자기에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우리 조상들도 성기를 일종의 민속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증거는  여러 군데에서 발견된다. 어린대를 제 때에  못 낳아
마음 고생한 아낙들이 치성을 드리는 여근 바위라는  것도 있다. 여성 성기에 대
한 별칭은 이미  말한 대로 300개를 넘지만 남성의 이칭은  절반 수준이다. 물론
150여 개의 남성 호칭도 우리말에 비하면  엄청나게 많은 편이다. 그중에는 우리
말과 같은 것도 꽤 된다. 일본 고어에서  가장 흔히 쓰인 명칭은 마라(魔羅)인데,
이는 산크리스트의 불전에 나오는 범어로서  8세기경 일본에 유입된 외래어이다.
이 마라는 본래  사랑의 신을 지칭했으나 악마, 파괴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남단의  마라도에 낚시 원정 온  일본인들이「마라」를 연발하
며 킥킥거리는 것도 알 만하다. 자고로 남자의  성기는 제대로 쓰이면 사랑의 불
을 지피고 생활의  활력을 얻게 되나 반대의  경우에는 사랑과 가정을 파괴하는
마물 덩어리라고 해서「마라」라고  했던 것일까. 요즈음은 남녀의  성기를 지칭
하는 말이나 사랑의 행위를  나타내는 언어가 국제화되어 거의 영어로 대체되어
가고 있다. 서울의 한랭이 일본의 환락가에서 하룻밤을 보낼 때, 상대가「피아노
」를 연발하여 피아노를 사달라는  졸림을 받을 것이 걱정돼서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자, 그녀가 뜨악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더라고 한다. 짧은 영어 실력이 문제였
다. 「피아노」가「부드럽게」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어이 알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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