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_by 성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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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사기란 사사롭게 육체를 파는 여성들로서 일반적으로 매춘녀와 다를바 없었다.  그녀들은 가기
와 달리 어떤 관료나 지주 혹은 부호에게 전속되어 있지 않았으며, 개별 혹은 극소수의 사람들에
게만 몸을 팔지 않았고, 병사들만을 위해 종사하지도 않았으며, 사회의 모든 남자를 대상으로 하
였다. 그녀들 중 절대 다수가 수준 높은 가무나 기예를 이용하여 남자의 환심을  얻는 일도 없었
고, 이러한 훈련도 받지도 않았다. 일반 남자들 또한 그녀들에게 많은 돈을 지급하지 않았다. 그
녀들은 주로 남자들의 성적 궁핍을 해결하기  위해 존재했던 것이다. 물론 이 사기에도  고, 중,
저의 구분이 있었다. 고급 기녀는 미색과 예능을 겸하여 문화적 소양이 높았을 뿐만 아니라 사고
가 민첩하며, 심지어 훌륭한 가기보다 뛰어난 이도 있었다. 그녀들은 주로 몇몇 상유층 인사들만
상대했다. 사기는 춘추 전국 시기에 이미 출현하였다. [사기, 화식열전]에 이런 내용이 있다.
  중산은 땅이 척박하고 인구가 많은데다, 주왕이 음란한 짓을 저지른 사구  일대에는 아직도 은
나라 후예가 남아 있어, 백성의 성격은  조급하고 투기에 능하며 이익을 보는 것으로  먹고 살았
다. 사내들은 함께 어울려 희롱하고 놀며, 슬픈 노래를 불러 울분을  터뜨리고, 움직였다하면 패
를 지어 사람을 때리거나 약탈하고, 쉴 때에는 도굴을 하여 교묘한 위조품을 만들고 간악한 짓을
일삼았으며, 잘생긴 사람은 배우가 되기도 하였다. 여자들은 거문고와 같은  악기를 연주하고 신
발을 질질 끌고 곳곳을 찾아다니며 부귀한 사람에게 아부하여 첩으로 들어가기도 하였는데, 이들
은 각 제후국에 두루 퍼져 있었다. 그리고 조나라와 정나라의 미인들은  얼굴을 아름답게 꾸미고
거문고를 연주하며, 긴 소매를 나부끼고 경쾌한 발놀림으로 춤을 추어 보는 이의 눈과 마음을 유
혹했다. 그들은 재물을 위해서라면 천리 길도 멀다 않고 늙은이와 젊은이를  가리지 않고 달려갔
다.
  이러한 사기의 출현은 공식적인 창가 혹은 창루를 낳았다. 이 창가는 경제 상황의 변화에서 기
인한다. 즐기고 싶어도 창기를 소유할 능력이 없는 사람도 있고, 부유하지만 창기의 소유를 지배
층의 특권으로 인식하여 창기를 갖지 못하는 이도 있었다. 게다가 급격한 사회 변화로 중산 계층
과 농민 가족이 해체됨에 따라 많은 수의 여성들이 직업을 구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하에서 개인
이 경영하는 창가가 생겨난 것이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기녀들의 춤과 노래를 즐기며 먹고 마
시고 밤을 지새웠다. 이 시기는 상업  경제가 초보적인 발전 단계에 있으며 도시  문화의 발전이
완만하기 때문에 가기는 상류층 사회에서는 보편적인 현상이었으나, 시장의 상업 종사자들에게는
보편적인 것이 못되었다. 오직 육조 시기에 이르러 가장 번화지였던 강남  일대의 성시에서만 사
기가 활약했다. 이런 상황에 관해서는 [옥대신영]과 [악부시집]의 몇몇 시에  반영되어 있다. 가
령 [양양락]의 "아침에 양양성을 출발하여/ 저녁에 대제의 숙소에 이르렀다/ 대제의 수많은 여인
/ 아름다움은 사나이의 눈을 놀라게 한다"고 노래했는데, 이것은 당시 이  지역에 사기가 성행했
음을 반영한다.([석성락]은 당시 떠돌이 나그네가 성행했으며, 기녀들은 잠시의 틈도  없이 접대
했음을 반영한다. 그리고 [야도랑]의 시구는 그 당시 관료, 귀족에게도 기가  있으며, 심지어 황
제조차도 기녀의 집에 머무는 일이 있었음을 반영한다)
  그 당시 사기는 장강 일대의 성시에서 비교적 발달했다. 개별 이름의 기녀가 처음 출현했으며,
후세까지 전해졌는데, 남송, 남제 때의 요옥경과 소소소가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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