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자유, 그리고 구속_by 성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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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애인은 나무랄 데가 없습니다. 나를 꼼짝도 못하게 하는 것만 빼면...”

“꼼짝 못하게 하다니요?”

“내가 연락없이 어디를 간다거나, 어디에서 누굴 만난다거나 하면 왜 그렇게 불안해하고 꼬치꼬치 알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남자들은 다 시간을 주면 바람을 핀다느니 하면서 거기가 어디냐, 누구랑 함께 있냐? 끈질기게 물어 보지요. 그럴 때면 정말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도 싶고, 진짜 확 바람이나 피워 버릴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숨이 딱 막히는 기분이지요.”

남편만의 문제가 아니다.

“내 남자친구는 정말 이상해. 내가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누굴 만나는지 왜 그렇게 궁금해 하지? 혹시라도 핸드폰을 못받거나 회의중이라서 꺼놓기라도 하면 전화해서 막 화를 내곤 해. 왜 무슨 일을 하는데 전화도 안 받느냐고 하면서. 그럴 때면 정말 핸드폰을 던져 버리고 싶다니까...”

매일 애인의 사랑 아닌 간섭을 받는 여성의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정말 이들의 배우자나 연인들이 이들을 너무나도 사랑해서 그러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곤 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라면 사랑은 집착이어선 안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간섭과 관심을 구분하자. 구속하면 더 도망가는 게 사람의 본성이다.

어쩌면 간섭이란 이미 그에게 자신감이 사라졌다는 반증이 아닐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사랑을 얻으려면 그 사람에게 잘해주고, 사랑을 잃으려면 그를 구속하라. 그러나 사랑을 오래 유지하려면 그에게 자유의 날개를 달아주라’고.

사이프러스 나무와 전나무는
서로의 그늘에서 자랄 수 없다

내가 결혼을 앞둔 이들을 위해 즐겨 인용하는 싯구가 있다. 철학자이면서 화가인 칼릴 지브란의 <결혼의 서>인데 결혼을 했거나 안했거나 사랑을 하는 이들은 꼭 읽어 보았으면 한다.

‘서로의 잔을 채워 주되 한사람의 잔으로만 마시지 말라.(중략)사랑하는 사람 사이에 바람이 다니는 길을 두라. 사원의 기둥도 떨어져 서 있다. 사이프러스 나무와 전나무는 서로의 그늘에서 자랄 수 없다.’

사랑하는 이를 묶지 말자. 그는 애초에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 영혼의 자유로움으로 그를 사랑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유롭고자 하며, 또 건강한 영혼과 몸을 가지고자 한다. 그러므로 그를 정말 사랑한다면 그가 그의 시간을 얼마간 자유로이 사용하도록 모르는 체해야 한다. 원래 그것은 그의 것이었고 그래야 그도 발전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나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구속받지 말자. 내가 그의 곁을 떠나고 싶다면 구속해 주기를 부탁하자.

사랑하던 이가 스토커가 되면 더이상 그를 사랑하기 어렵게 된다. 그것은 그가 나의 자유를 사랑이라는 이름의 볼모로 잡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가끔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는 더 이상 그를 사랑하지 않는데 그래서 그와 헤어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그는 나를 줄기차게 사랑한다면 그의 스토커가 되라’고. 그래서 그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나타난다. 입가엔 배시시 웃음을 베어 물고. 그리고 그의 집앞에서 기다린다. 또 10분, 5분마다 전화를 해서 무얼 하느냐고 묻는다. 그러면 필경 헤어질 수밖에 없다. 지긋지긋해서 그가 먼저 헤어지자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을 오래 유지하고 싶다면 그 반대로 해야 하지 않겠는가.

아내와 남편도 마찬가지이다. 결혼했다고 인간의 본성이 달라지진 않는다. 물론 결혼하면 독신이었을 때보다 책임감도 느끼게 되고 당연히 귀소본능이 생긴다. 또 무한대로 자유롭게 살 수도 없다. 모두 다 안다. 그렇게 살아선 안된다는 걸...

그러니 내가 조금 더 자유를 준다 해서 그가 어디로 달아나지는 않는다. 물론 나도 그에게서 그만큼 놓여나야 할 것이다. 그는 놓아주고 나는 그에게 묶여 있다면 그것은 정당한 계약이 아니다. 서로 간섭하는 것을 너무나 좋아한다면 정말 바랄 나위가 없겠지만...(실제 그런 커플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사랑에 생기를 불어넣고 사랑을 오래 가게 하는 꽃병의 얼음같은 것은 바로 얼마간의 자유이다.

남편에게 그리고 아내에게 자유를 주자. 결혼은 교집합이지 합집합이 아니다. 밖에서의 그들의 시간은 처음부터 그들의 것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돌아오면 그때 꼭 잡고 사랑을 하자. 아주 멋지고 열정적으로...

내 남편을, 아내를 정작 꼼짝도 못하게 하는 것은 오히려 얼마간 놔주는 것(간섭이 아니라), 나는 더 멋진 사람이 되어 나를 사랑하지 않고는 못배기게 하는 자유, 그 내면의 느긋함이다.

배정원/ 인터넷 경향신문 미디어칸 성문화센터 소장


여성센문 제7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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