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꼈어?" "느끼긴 뭘 느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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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꼈어?" "느끼긴 뭘 느껴!"              이미지 #1
영화 <그날의 분위기>
 
얼마 전 한 독자분에게 메일 한 통을 받았다.
 
 
제 여친은  섹스 경험이 없는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관계 후 여친에게  "자기도 느꼈어?" 라고 물어보니, "뭘 느껴"라고 하는 겁니다. 망치로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섹스는 서로 즐겁기 위해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오르가즘을 모른다니요.
 
 
메일을 받은 후 답장을 해 드려야 하나 마나 고민했다. 남녀 간의 침실 이야기는 두 사람 이야기를 다 들어보지 않는 한 제대로 알 수 없으므로 뻔한 이야기를 빼고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답변을 드릴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그 편지를 받고, (나를 포함한) 한국 여자들의 섹스에 대한 소극적임과 냉소적임에 대해 한번 생각해 봤다.
 
섹스가 늘 만족스러울 수는 없다. 한 번도 만족스러운 섹스를 해 보지 못했다는 여성들도 많다. 여기서 말하는 만족이란 영혼의 교감, 충만해지는 사랑… 뭐 그런 것이 아니라 섹스를 통해 오르가즘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도 영원히 만족이란 모르고 섹스하며 살길 바라는 사람처럼 ‘(느끼긴) 뭘 느껴?’ 라고 말하는 냉소적인 태도는 정말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할 한국 여자들의 고질적인 문제다.
 
그냥 일부 여자들이라고 해도 될 것을 한국 여자들이라고 싸잡아 말하는 이유는 전반적으로 한국 여자들이 서구권 여성들보다 섹스에 대해 소극적인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단지 수동적인 체위를 고수하는 문제가 아니라, 파트너와의 섹스 트러블이 있을 때 어떻게든 해결해보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거나 지레 포기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남자들은 신이 아니다. 여자들보다 포르노나 야동을 많이 보긴 했지만, 여자가 어떻게 해야 만족하는지 당사자들만큼 잘 알 수는 없다. 좋아하는 분위기부터, 성감대, 선호하는 체위, 강약조절 등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지 않는 한, 척척 알아서 여자를 오감 만족의 세계로 인도하는 남자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길 기다리듯 가만히 누워서 오르가즘을 따 먹을 수 있기를 바라는 여자들이 많다는 건 슬픈 일이다. 상대방의 손을 슬쩍 끌어 짚어주거나, 좀 더 강하게, 부드럽게…. 말이 힘들다면 신음소리라도 사용해서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해야 하는 거 아닌가.
 
착한 여자들은 ‘괜히 말 잘못 꺼냈다가, 남자 친구가 상처받게 되는 건 아닐까?’ 두려워한다. 이런저런 요구를 했다가, 별반 소득도 없이 ‘여자가 너무 밝히는군’ 이라는 평가만 받게 되지 않을까 걱정되는 것이다. 파트너와의 관계에서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 문제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지 않을 여자들은 없다.
 
아마 메일 주신 분의 여자친구분도 나름의 고민이 있을 것이다. 다만, 해결하기엔 너무나 멀게만 느껴지는 일에 대해 (섹스에 대해 말을 꺼내는 일 자체가 그녀에게는 넘기 힘든 커다란 산일 수 있다)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는 대신, ‘그까짓 게 뭐가 중요해!’라고 생각해버리는 쉬운 길을 택했을 가능성이 크다.
 
나도 한때 그랬었고, 많은 여자가 쉬운 길을 택한다. ‘섹스보다는 사랑이 중요하니까’ ‘나는 그런 거 없이도 살 수 있으니까’ 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침실에서만큼은 봉사 정신을 발휘하는 것이다. 과한 비유일지는 모르지만 ‘나 하나만 희생하면 집안이 조용하다’라는 생각으로, 평생 아버지의 비유를 맞추고 사는 한국 엄마들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좀 시끄러워도, 아웅다웅해도 모두가 자신의 행복을 소중히 여기는 엄마가 있는 집이 결과적으론 더 화목하고 행복해지는 것처럼, 남자친구와 좀 다투게 되더라도 좀 서운해하더라도 좀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더라도… 냉소하는 대신 대화하고 노력하는 여자들이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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