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슬년과 화냥년, 선과 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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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년과 화냥년, 선과 악              이미지 #1
영화 [프랑스 중위의 여자]
 
‘이따금 부리는 사소한 짜증, 변덕스러운 감정의 변화, 숨어있는 야성의 낌새, 성적인 기교를 기꺼이 배우고 언젠가는 수줍게, 그러면서도 맛있게 금단의 열매를 깨물어 먹겠다는 의욕......’
 
당시에 일반적인 1등 신붓감으로 여겨지는 여자에 대한 묘사이다. 시대는 성적 억압이 강력했던 1800년대 빅토리아 시대이다. 앞으로는 점잖음을 표방하면서 뒤로는 각종 퇴폐가 창궐하던 시대, 풍요로우나 의욕이 사라진 시대, 귀족들은 게으르고 왕은 타락하던 시대, 그리고 평민들은 귀족에 의해 우롱 되고 자기의 욕망마저 허락받아야 했던 시대라고 묘사되고 있다. 찰스가 무의식중에 느낀 이런 것들은 어쩌면 천박한 마음을 가진 여인들의 영원한 매력에 불과했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매력은 요컨대 남자가 원하는 대로 그들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거 어디서 봤는지 기억난다. 우리나라 1980~1990년대 드라마의 여주인공들. 하나같이 수동적이거나 새침데기들, 그녀의 표정으로는 도대체 남자 주인공을 좋아하는지 알 수 없었던 드라마의 여자들. 남자 주인공의 욕망이 자기의 실현이 되는 듯, 사물처럼 애매한 미소만 지어대던 여자 주인공. 너의 욕망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 영국, 정부나 사회는 그들에게 금욕을 강요하고 욕망을 승화시켜 사회의 진보에 이바지하라고 강요했으나, 그 결과 사회는 오히려 온통 성에 사로잡혀 있었다. 여성 안의 성적 주체성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치부되어 있었고, 여성의 절정은 없는 것이라고 교육되었다. 인간 활동의 다른 모든 분야에서는 거대한 진보와 해방이 이루어졌지만, 가장 인간적이고 근본적인 측면에서는 횡포만이 존재했다.
 
‘여자들은 오르가즘을 맛볼 수 없다는 설이 보편적으로 주장되었지만, 창녀들은 오르가즘을 느끼는 척하도록 가르침을 받았다. 얼핏 보기만 해도 해답은 분명했다. 그것은 승화시키는 일이다.
 
- <프랑스 중위의 여자> 중

 
현시대 여자중 일부도 오직 요사스럽게 애교를 떨어대며 변덕스럽게 남자에게 다가갔다 뒤로 빼기를 반복하며, 남자로 하여금 애가 닳게 하는, 마치 하나의 사냥물이 되는 것을 마다치 않는 행위들. 이들의 매력도 요컨대 남자가 원하는 대로 그들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점이다. 자기의 욕망을 가지지 않은 맹한 여자란 남자에게 더할 수 없이 편리한 상대가 되어준다.
 
우리나라도 1990년대까지 남성은 그 어떤 성적 방종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런 것이 '능력자'로서 묘사되고, 여성에 대해서는 같은 경우에 '화냥년' 이나 '갈보'라는 다소 불쾌한 언어로 낙인찍혔다. 이 책에서 사라가 자기를 가리켜 칭한 언어도 바로 이것이다. 그녀는 실은 이런 거짓 소문을 만들어냄으로써 억압적인 사회로부터 자기를 해방시켜 낸다.
 
200년이 지난 오늘날 한국. ‘보슬년’. 보지가 벼슬인 여자, 물론 비하적인 발언이고 훌륭한 방식의 지탄은 아니다. 그러나 바로 성이 서로의 쾌락을 위해 서로의 몸을 주고받아 나누는 것이라는 인식을 아직도 못하고선. 여자는 주는 것이고 그래서 결혼까지 가려면 덜 줘야 하고, 애끓게 해야 하고, 남자는 받고 먹고 선물, 모텔비 등으로 대가를 지불하는 식. 결혼으로 보답. "너를 먹어왔으니 경제적 책임을..."의 인식이 아직도 일부에선 여전한 것 같다.
 
논란의 여지는 있겠지만,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경제적 목적을 위해 사귀는 남자이던 남편이든 간에 그들을 위해 다리를 벌리는 것까지를 넓은 범위의 '창녀 행위'라고 본다. 그러나 이는 현 제도상으론 '선'이다. 거의 모든 포르노, 매춘여성의 섹스 마감은 남성의 사정과 함께이다. 그래서 그녀는 시종일관 같은 표정과 신음으로 몸을 벌리고 있다. 그러나 이는 현 제도상으론 '악'이다. 현 사회제도 안에서는 끔찍한 배우자와의 섹스리스 상태에서 이루어진 더할 나위 없이 사랑이 넘치는 불륜이었다 해도 '악'에 해당할 것이며 현 제도상으론 '악'이다. 결혼이라는 제도하에서 남성의 매춘여성과의 섹스 이는 아마 성매매가 합법화 되면 제도상으론 '악'은 아니다. 그 비윤리성에도 불구하고.
 
니체는 개개인의 인간을,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일부 구성원으로 써먹기 위해 그저 만들어 놓은 단순한 제도 안에 끼워 넣는 무조건적인 선과 악의 구분을 거부한다. 니체가 특이한 생각을 하는 이상한 사람인 게 아니라, 현대 인문학상 많은 철학자와 문학가가 그의 사상에 긍정적인 의견과 지지를 보여왔다. 아시겠지만 얼마 전 드라마에 나와서 유명해진 고전 '데미안' 역시 니체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헤르만 헤세의 작품이다. 그들이 유명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나도 이들의 의견에 어느 정도 찬성하고 한계적 제도가 가르는 무조건적인 선과 악의 구분을 거부한다
 
200년이 지난 오늘날. 이 사회에는 '사라'보다 덜 진보된 정신으로 일부 현대인들이 아직 그렇게 존재한다. 화냥년은 사라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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