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결혼과 씁쓸한 파경에 대하여_by 성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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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결혼과 씁쓸한 파경에 대하여
과학적인 연구로 밝힌 결혼과 이혼의 심리적 요소
Science of Marriage


부부가 애정을 유지하며 오래도록 흡족한 삶을 지속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결혼과 이혼의 심리적 요소들이 하나둘 밝혀져. 일본에서는 2003년 28만쌍 이상의 부부가 이혼했다. 배우자에게 불만이 있다면 빨리 단념하는 게 옳은 걸까?


부부관계가 없더라도 강한 유대 관계를 지속할 수 있을까? 사람은 왜 한사람의 파트너와 인생을 같이 하려는 것일까? 이제 과학자들이 첨단기술을 이용해 결혼의 미스터리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유쾌한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요령과 오래도록 행복한 부부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 비결을 탐구한다.

미국 시애틀 소재 워싱턴 대학의 가족연구소. 한 방에 한 쌍의 커플이 앉아 있다. 가슴에는 심장박동측정기 센서, 손가락과 귀에는 체온과 발한량을 재는 장치가 부착돼 있다. 두 사람이 앉아 있는 의자는 부자연스러운 몸동작을 파악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얼굴 찡그림이나 경련 같은 다양한 표정을 잡아내는 비디오 카메라도 곳곳에 숨어 있다.
두 사람은 평상시와 다름없는 듯 부부간의 문제에 관해 토론하기 시작한다. 옆 방에서는 연구원들이 두 사람의 생리적인 데이터와 언어·표정 등을 면밀히 모니터하고 있다. 시청자가 참가하는 새로운 리얼리티 프로그램일까. 천만에. 최첨단 결혼 카운슬링이다.

신혼부부들은 예로부터 원하든 원치 않든 가족이나 친구들로부터 늘 이런저런 참견과 조언을 받아 왔다.
그러나 이제 일과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로 이웃이나 친척과의 유대가 약해지면서 부부간에 문제가 생겼을 때 과학적인 해결법을 따르는 부부가 늘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혼이 급증한 1970년대 이래 결혼 카운슬링이 서서히 증가하기 시작했다. 66년에는 1천8백명에 불과했던 전문 치료사가 지금은 4만7천명이 넘는다. 그러나 과거 조사에 따르면 카운슬링이 성공한 예는 그다지 많지 않다. 이제 연구원들은 고민하는 부부에게 보다 더 효과적이고 지속적인 치료를 제공하기 위해 결혼이라는 회색지대에 과학의 메스를 들이대려 하고 있다.

인류학자나 신경과학자는 일부일처제의 장점이나 섹스가 부부간의 유대에 미치는 중요성을 밝히려 노력하고 있다. 언어학자들은 남녀의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을 분석하고 있으며, 심리학자들은 이혼의 위험인자들을 포착해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이같은 연구를 통해 결혼이 무엇인지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요령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오래도록 행복한 부부로 남아 있을 수 있을까?

그런 지식과 정보가 필요하기는 일본의 부부도 마찬가지다. 일본에서는 90년대 이후 이혼율이 상승하고 있으며 2003년 한햇동안 28만쌍 이상의 부부가 헤어졌다. 절반 이상이 20~30대 부부로 그 대다수는 결혼한지 5년 이내다.
하지만 일본의 부부들은 선뜻 카운슬러의 도움을 받으려 하는 것 같지 않다.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카운슬링에 돈을 지불한다는 의식이 없다”고 도쿄가쿠게이(東京學藝)대의 야마다 마사히로(山田昌弘) 교수(가족사회학)는 말한다.

야마다 교수에 따르면 젊은 부부가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헤어지는 것은 이혼해도 부모가 관대하게 받아주는 영향도 크다고 한다. 일본에선 부모에 얹혀사는 ‘기생독신자’(parasite single)가 많다.

그러나 이혼을 원치 않는 사람들은 도움의 손길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간다 유키코(가명)는 남편과 부부관계를 하지 않은 지가 6년이나 됐다. 남편과 따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고 거의 룸메이트나 다름없다. 그러나 간다는 어떻게든 이혼만큼은 피하고 싶다. 남편으로부터 "예쁘다"는 말을 듣고, 함께 손을 잡고 쇼핑하던 시절이 그립다고 그녀는 말한다.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돌아가는 방법이 있다면 가르쳐 주세요."

위기를 맞은 부부들을 돕기 위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결혼생활에는 굴곡이 있게 마련이지만 그 원인을 알면 대처하기 쉬울 것이다. 최신 연구에 따르면 일부일처제는 심리적 안정을 가져다주는 듯하다. 뇌에는 심부대뇌변연계(深部大腦邊緣系)라는 호두 크기만한 부위가 있다. 이것은 정서의 중추 역할을 하는 영역으로 양호한 파트너십을 유지하는 데 관여한다.

사랑을 하면 뇌 속에서는 아드레날린의 분비가 늘고 세로토닌이 감소하며 도파민이 증가한다(카페인이나 니코틴의 흡수로도 도파민이 늘어난다). 이렇게 해서 우리들은 사랑의 행복감에 도취된다. 물론 이 상태가 언제까지나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계속 사랑에 도취돼 있으면 사고가 한쪽으로 기울며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게 된다(세로토닌은 우울한 상태에서도 감소한다).

그러나 커플의 관계가 장기적으로 지속되면 뇌의 상태가 변화한다. 도파민이 줄고 세로토닌이 증가하면서 뇌 상태의 균형이 개선된다. “연애중인 사람의 뇌는 연애밖에 생각하지 않는다”고 캘리포니아주 에이먼 클리닉의 설립자 대니얼 에이먼은 말한다. “오랜 기간에 걸쳐 사랑의 유대가 유지되면 변연계 활동의 밸런스가 좋아진다.” 그렇지만 장기적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애정을 키워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럿거스대 인류학자 헬렌 피셔는 신경과학자들과 함께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 장치를 이용해 커플들의 뇌를 연구하고 있다. 이들은 오르가슴의 순간, 남녀의 뇌 속에서는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이라는 호르몬이 방출된다는 것을 알아냈다.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은 아이에게 젖을 먹일 때 분비돼 모자간의 유대를 강화해주는 호르몬이다. 말하자면 부부관계도 만족스러운 섹스를 거듭하면 할수록 더욱 긴밀해진다는 것이다. 반대로 부부간에 섹스가 없는 관계에서는 섹스 이외의 애정표현과 결속력도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남성은 이 메커니즘을 기억해둬야 할지 모른다. 남성의 옥시토신 양은 원래 여성보다 적다. 그러나 오르가슴에 달하면 그 양이 5배로 늘어난다. 그에 따라 처자에 대한 애정도 더 강해질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일석이조다. 모자간의 유대를 강화해주는 호르몬이 남녀관계를 유지시키는 데도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유아가 홀로 생존할 수 있을 때까지 부모를 묶어두기 위한 진화의 배려일 것”이라고 피셔는 말한다.

그러나 인간은 진화가 준비해놓은 완벽한 루트에서 곧잘 벗어나곤 한다. 결혼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남성과 여성은 가끔 서로가 다른 별에서 온 외계인처럼 여긴다. 언어학자 데버러 태넌은 남녀의 대화를 녹음·분석해 ‘남자를 토라지게 하는 말, 여자를 화나게 하는 말’(You Just Don’t Understand)을 저술했다. 남녀간에 오해가 끊이지 않는 것은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태넌은 주장한다. 태넌에 따르면 남성은 대화할 때 상대를 굴복시켜 지배하려 하고, 여성은 이해를 도모하고 협력체계를 쌓으려 한다. 이 차이를 이해하고 있으면 부부간의 마찰도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인류학자 게리 채프먼에 따르면 부부사이가 틀어지는 원인은 남녀간의 차이뿐만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몸에 밴 애정표현 방식도 그 한가지 원인이다. 그의 저서 ‘5가지 사랑의 언어’(The Five Love Languages)에 따르면 인간은 여러가지 형태로 애정을 전달한다. 애정표현의 수단은 크게 나눠 5가지, 즉 말·행동·선물·함께 지내는 것·신체의 접촉이다.

상대방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형태로 애정을 표현하는 것이 원만한 부부생활을 하는 비결이라고 채프먼은 말한다. 먼저 자신이 원하는 애정표현을 분명히 해서 그것을 파트너에게 알리라고 채프먼은 권한다.

상대방을 좀더 깊이 이해하게 되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도 있다. 그러나 가족연구소의 존 가트먼 소장에 따르면 문제의 약 70%는 평생 동안 해결되지 않는다고 한다. 단, 문제점을 분명히 알 수 있고 상대방을 짜증나게 하는 자신의 버릇이나 성격을 알고 있으면 대처 방법도 찾을 수 있다.

30년간 연구해 온 가트먼은 부부간에 불화를 야기하는 요인으로 4가지 태도를 들었다. 비판과 자기방어·모욕·비협조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유머와 애정으로 문제에 대처하면 원만한 결혼생활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가트먼의 연구는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많은 결혼 카운슬링에 활용되고 있다. 커플 관계 개선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영국 최대의 단체 릴레이트(Relate)도 그중 하나다. 릴레이트의 샬럿 임버트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성격이 맞느냐에 신경을 쓰지만 그런 걱정은 잘못된 것이다. 분명히 해둬야 할 것은 어떠한 어려운 상황도 같이 극복할 수 있느냐, 그것을 가능하게 할 만한 신뢰관계를 쌓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같은 의문에 대한 답을 알고 싶다면 가트먼의 체크리스트가 도움이 될 것이다.

두 남녀가 잉꼬부부가 될지 파경을 맞을지를 정확히 예측하기는 불가능하지만 그에 관한 자료는 어느 정도 확보됐다. 덴버대의 하워드 마크먼이 이끄는 연구팀은 과거 30년의 조사를 바탕으로 이혼의 위험인자를 알아냈다.
통계에 따르면 두번째 결혼이 깨지는 비율은 첫번째보다 높다고 한다. 어느 사회에서나 결혼 시기가 빠를수록 이혼율이 높다는 데이터도 있다.

한편 결혼 전에 동거한 부부가 이혼하는 확률은 동거하지 않았던 부부보다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동거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결혼을 그다지 중시하지 않으며 가정이라는 속박에 대해 이중적인 태도를 갖고 있는 탓이 아닐까 심리학자들은 추측하고 있다.

이혼 확률이 높은 그룹에 속해 있다고 해서 걱정할 것은 없다. 지금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갈등에 능숙하게 대처하거나 유대를 강화하거나 결혼에 대해 비현실적인 생각을 버리면 이혼을 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에서 널리 이용되고 있는 예방·관계개선 프로그램(PREP)은 부부가 문화적 요인 등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심어진 생각을 버리게 한다. 대신 올바른 커뮤니케이션 규칙을 가르친다. 그 결과 남편은 아내와의 대립을 수용하게 되고, 아내는 남편이 화내거나 속썩일 때 잠시 거리를 두게 된다.

이같은 룰을 따름으로써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게 되며 그것을 해결할 가능성도 커진다고 한다. “아무리 심하게 싸우더라도 처음에는 두 사람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라고 PREP의 창설 멤버인 마크먼은 말한다. “중요한 것은 싸움을 잘 활용하는 것이다.”

6년 전 결혼한 숀 키스와 제니퍼(둘 다 29세)는 부부싸움을 잘 활용하고 있다. 그 비결은 “건설적이고 솔직하게 싸우는 능력”이라고 아내 제니퍼는 말한다. 두 사람은 가계에 관한 것 등 사소한 일상사로 곧잘 말다툼을 벌이곤 한다. “서로 욕하기도 하지만 무엇이든 뒤탈이 없도록 한다”고 남편 숀은 말한다. “서로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합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하죠.”

그렇다면 대화가 적은 부부는 이혼할 확률이 높을까? 미국의 저명한 섹스치료사 데이비드 슈나크는 커뮤니케이션을 잘못하는 것과 이혼은 거의 관계가 없다고 색다른 주장을 편다. 관계가 악화된 부부는 마음이 멀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찰싹 달라붙어 있다고 그는 말한다. 슈나크는 문제가 있는 부부에게 자립적인 인간으로서 파트너를 대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 마음까지 만족시켜주는 섹스에 관한 워크숍도 열고 있다.

슈나크에게는 일본인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의 부부들도 상담하러 온다고 한다. "국적은 관계없다"고 슈나크는 말한다. "도쿄의 커플이 부부관계를 갖지 않는 이유는 바쁜 업무, 스트레스, 육아에 따른 피로다. 그것은 뉴저지주의 커플에게도 마찬가지다." 일본인들은 대체로 치료를 꺼리기 때문에 슈나크를 찾아가는 사람은 드문 편이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달라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네소타대의 연구원인 아사이 슈지(淺井修司)는 미국에서 개발된 결혼 전 카운슬링 프로그램 ‘프리페어’가 일본에서 적용될 수 있는지 조사한 적이 있다. 아사이에 따르면 일본에서도 연애결혼의 증가로 신혼부부들이 예전처럼 가족이나 연장자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에 전문가의 지원 필요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한다.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날 것이다. 일본에서는 유료 맞선 서비스가 이미 보편화돼 있다"고 아사이는 말한다. "그렇다면 결혼생활 자체에 대한 유료 지원 서비스의 대중화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겠는가."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 그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을 것이다. 조사에 따르면 PREP와 같은 과학적인 프로그램이 종래의 카운슬링보다 더 결과가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가 발전함에 따라 결혼 카운슬링에도 객관적인 접근이 늘고 있다.
카운슬링을 받을 때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지, 이혼할 수밖에 없는지 명확히 알려 달라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혼상담가 미셸 와이너-데이비스에 따르면 그것은 지나친 요구다. "참지 말라든가 자신의 인생을 걸어가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상담가 자신의 가치관을 강요하는 것일 뿐이다."

치료가 기대에 못미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일본에는 정규 이혼 카운슬러 자격 규정이 없기 때문에 최신 연구나 실험 데이터를 활용하기보다 오로지 자신의 이혼체험을 바탕으로 상담을 해주는 사람들이 많다. 요시무라 마리코(가명)가 이혼 전에 상담받은 몇명의 카운슬러도 그런 유형이었다.

"카운슬러와 상담하면 뭔가 바뀔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결국 내 마음을 가장 잘 치유해준 것은 친구와 직장동료들”이었다고 요시무라는 말한다. "그럴 줄 알았으면 돈 쓰지 말고 차라리 친구를 찾아갔을 텐데."
이상적인 치료법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여러 통계자료에 따르면 결혼생활을 유지하면 자식들뿐만 아니라 부부들 자신에게도 이롭다고 한다.

2002년 80대 말과 90대 초반의 커플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시카고대의 연구에 따르면 결혼에 실패했다고 생각해 이혼한 경우 이혼하지 않았던 사람에 비해 더 행복해지지는 않았다.

반대로 처음에는 결혼에 만족할 수 없었던 부부의 3분의 2가 그냥 세월이 흐른 후 또는 어려움을 극복하려 노력하는 과정을 통해 행복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결혼하지 않는 길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독신생활이 반드시 더 매력적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 같다.
영국의 조사에 따르면 결혼한 사람이 독신자나 이혼자보다 일반적으로 유복하고 즐겁게, 그리고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으며 성생활도 왕성하다고 한다. 역시 할 수만 있다면 판을 깨기보다 키스하고 화해하는 편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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