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국노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애국자로 살다 간 우장춘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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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씨 없는 수박으로 유명한 우장춘 박사

 

사실 씨 없는 수박은 그의 업적이 아니다

 

단지 이런 연구도 가능하다고 국내에 소개한 일화가 각색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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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박사는 을미사변에 가담한 매국노 우범선이

 

일본으로 도망가서 일본인과 결혼해 낳은 아들이었다.

 

도쿄에서 태어나 도쿄제국대학 농과대학 실과에 입학한 우 박사는

 

일본 땅에서 평생 일본인으로 사는게 더 이득이었다.

 

그러나 우 박사가 조선인, 한민족의 정체성을 자각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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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한 조선의 도지사가 방일해 조선인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친일 연설을 하자

 

와세다 대학 유학생 김철수가 단상으로 올라가 멱살잡이를 하며 항의한 사건이 발생한다.

 

우 박사 역시 그 자리에 있었고 이 사건을 계기로 김철수와 친분을 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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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년 후의 김철수 선생

 

김철수 : 이봐 우장춘이, 자네 아버지가 저지른 일을 알고 있어?

 

조선인의 피가 흐른다면 평생 조선을 위해 봉사하고 성도 바꾸면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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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우 박사는 일본인과 결혼하였지만 우씨 성을 유지했다.

 

우 박사는 데릴사위로 들어간거라서 명목상으론 처가의 성으로 바꿨지만

 

그의 영어논문에는 뚜렷하게 나가하루 우, 즉 우씨 성으로 기재되어 있다.

 

나가하루 역시 장춘을 그냥 일본어 발음대로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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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장춘은 1935년, 종의 합성을 다룬 자신의 논문에서

 

식물의 종간 교잡을 통한 새로운 종의 탄생이 가능함을 입증하여

 

이듬해 도쿄제국대학 농학박사를 취득한다.

 

이는 종의 분화는 자연선택이라고 주장한 다윈의 진화론을 수정하게 만든 큰 업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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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광복 후 우리나라에선 우장춘 박사 환국 운동이 일어났는데

 

대한민국 정부 지원 아래 한국농업과학연구소가 건립되면서 추진력을 얻었다.

 

마침내 1950년 우 박사는 대한민국 땅을 밟는다.

 

일본도 세계적인 농학자를 놓칠 순 없어서 우 박사를 붙잡으려고 했으나

 

우 박사는 한국땅으로 환송을 기다리는 조선인 수용소에 들어가는 방법으로 도해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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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농업국가였던 당시의 대한민국에 우 박사는 실로 귀중한 인재였다.

 

그는 장관직도 마다하고 연구에 매진했으며

 

이적 지원비로 받은 100만엔도 모두 종자 구입에 썼다.

 

심지어 우 박사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해군 장교로 임관해 소령으로 전역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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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때부터 교류하던 김철수 선생과 함께 사진을 찍은 노년의 우 박사

 

 

하지만 한일 혼혈은 때로는 약점이 되어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우 박사가 한국에 건너올 때 일본이 방해공작을 펼친 것처럼,

 

한국 정부 역시 그가 일본으로 돌아가는 것에 비협조적이었다.

 

일본에 있는 처자식을 보러 갈 수도 없었고 어머니의 임종도 지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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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우 박사는 십이지궤양 수술을 받았으나 병세가 악화된다.

 

8월 7일, 병상에 누워있던 우 박사에게 뒤늦게 대한민국 문화포장이 수여된다.

 

훈장 수여 3일 후 우장춘 박사는 세상을 떠난다.

 

그의 장례는 대한민국 최초로 사회장으로 진행됐다.

 

 

 

현재 우리가 속이 꽉찬 튼실한 배추와 무로 김치를 담그는 것도,

 

제주도가 감귤의 특산지가 된 것도

 

강원도에 병해에 강한 씨감자가 보급된 것도 모두 그의 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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