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장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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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장춘 이미지 #1


우장춘 박사.



 

보통 씨없는 수박을 만든 사람이라 생각하지만 이 분은 씨없는 수박을 만들지도 않았다고 한다. (만든 사람은 일본 과학자)


그냥 한국에 와서 "유전학을 연구하면 이런 신기한 작물도 만들수 있다." 라며 보여준 것인데 워낙 충격이 커서 씨없는 수박 박사 = 우장춘 으로 알려졌을 뿐.




오히려 우장춘이 이룬 가장 큰 학문적 업적은 1935년 "배추속(Brassica) 식물에 관한 게놈 분석"이라는 논문을 통해 '종의 합성' 이론을 제시한 것이다.


이 이론을 통해 다윈이 만든 종의 기원 - 진화론을 일부 수정 하게 만들었는데, 이것만으로 한국인으로서는 몇 안되는 과학자적 업적을 세계에 남긴 사람이다.


(해당 논문은 아직까지도 십자화과 식물 (배추, 유채, 양배추) 의 연구 논문이면 필수적으로 인용되는 논문이다.)

 




그의 아버지 우범선은 을미사변에 가담했던 친일파였고, 우장춘의 연구 대부분은 일본 시절에 이뤄진 것들이었다. (엄마가 일본인)


하지만 우장춘은 자신이 한국인임을 자각하고는 2차 세계대전 후에 스스로 조선인 강제 수용소에 들어가며 한국에 들어왔다.


일본은 세계적인 과학자를 잃고 싶지 않아 그의 귀국을 막기위해 구속까지 하려했지만 끝내 스스로 귀국한다.





한국에서는 식량난 해결을 위해 종 개량에 힘썼는데

대표적으로 고급 식물이였던 배추를 개량하여 생산성과 맛을 높여서 김치하면 배추김치를 만들었고 (요즘 우리가 먹는 바로 그 배추. 이 품종은 외국에선 거의 구하기 힘들고, 외국에서 재배하더라도 한국 토양과 기후가 아니어서 다른 맛이 난다.)

 

무의 맛과 생산성을 높이며, 수출을 위해 화훼산업용 꽃 종자들을 개량하고,


당시만해도 대표적인 작물이 없다시피했던 제주도에 감귤사업을 위해 귤 개량에 나서 제주도의 감귤사업을 안착시켰다.


그가 한국에 와서 죽기전까지 연구했던건 생산성을 높이면서도 맛이 좋은 쌀 종자의 개발이었다.


 

 

 

한국에서는 그냥 씨없는 수박 만든 사람으로 잘못 알려졌지만 그는 이렇듯 세계적으로 이름을 남긴 몇 안되는 한국인 과학자이다.


그의 업적이 대단함에도 불구하고 씨 없는 수박의 창시자라는 와전된 사실이 계속 전해지는 데다가, 그에 대한 내용은 고작 책 모퉁이에 짧게 나오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오히려 일본에서는 우장춘의 연대기를 공부하고 그에 대한 책을 내는 형편이다.

(사실 우장춘의 모든 학문적 업적은 일본에서 쌓은 것이며, 한국에서 보낸 마지막 10년 동안은 새로운 학문적 업적 쌓기를 포기하고 한국의 농업 발전을 위한 실험과 육종 사업에만 치중했다고 하니 일본에서 그가 굳이 한국인이라고 밝히지 않는 것도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일.)





사망하기 3일 전에 병상에서 정부로부터 문화 포장을 받고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가 있다. 이 때 한 말은 조국이 드디어 나를 인정해 주는구먼. 그런데 조금만 더 일찍 주지. 라고.


그도 그럴 것이 그 조국의 입장에서 우장춘은 반역자 우범선의 아들이고, 그가 성장하고 업적을 이루는데 도움을 줘야 하는데 당시 대한민국의 사정상 그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뒤늦게나마 보상한답시고 포장을 줬긴 했으나, 그의 심정이 착잡하긴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 평생을 대단한 애국자로 살아 갔던 인물로, 일본에서 성을 바꾸거나 하며 조금만 굽히면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을 모조리 버리고


조선, 대한민국, 그리고 한민족이라는 이름하에 열심히 일한 위인 중의 위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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